신나라 아가동산 교주의 악행을
응징 할 것을 만방에 선포한다.
-30년 신나라 아가동산 불법-거짓과 진실-
2009년 1월
신나라 아가동산 악행 척결 집행부 일동
(서울 중랑구 묵1동 122-41)
30년 신나라 아가동산의 불법-거짓과 진실의 실체
경기도 이천 아가동산의 창설 동기는, 1970년대에 세상에 환멸과 공허 회의를 느껴 좌절에 빠져 방황하던 자들로, 그 당시 기독교 부흥강사인(전북 익산시 주현교회) 이 교부 전도사를 만나 그의 가르침과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소망과 희망 광명을 찾아 삶에 길을 찾았던 자들이었다. 수십 수백 수천명에 거지 노숙자 심지어 정신병자들까지도 이교부를 따르게 되었다. 1979년 1월에 익산시 주현교회에서 부흥회 집회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목사들이 수십 명 참여했는데, 불법과 비리에 차있는 목사들을 ‘기독교 비리는 기독교 책임이다.’ 천여명 넘는 사람들 앞에서 회개하라며 기독교를 충정하는 마음에서 체벌했다. 이교부의 본뜻을 모르는 목사들이 폭력으로 고소하여 구속됐다. 그 당시 죄명은 폭력, 사이비 종교, 간첩, 공산주의라고 했다.
이교부는 늘 말하기를, 교회에 헌금(돈)을 낸다고 병 낫고 부자 되고 천당 가는 것 아니다. 하나님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회에 속지 말아라. 교회에 헌금 낼 돈 있으면 부모를 섬기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국가에 세금을 잘 내라고 했다. 종교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여 서로 분열되고 싸우면서 부모 형제까지도 종파가 다르다고 이단 마귀라고 원수 시 하고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런 종교들이 없어지고 차라리 무신론이 되어서라도 나라와 민족이 통일되고 모든 인류가 부모형제 되어 하나님같이 섬기며 사랑해야 된다. 죽어서 천당보다 살아 지상천국을 만들어 진실 되고 의롭고 공의로운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소외된 자들이 하나도 없는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던것이다. 우리는 이교부가 이단 사이비 간첩 공산주의라고 해도 그의 진실과 행함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목숨 바쳐 함께 살고 감옥이라도 같이 가고 죽음도 불사하려고 했던 무리 중 일부였다. 이교부를 구하려고 정부에 진정도 항의도 해보았으나 간첩 공산주의 무리라고 성사되지 못하고, 이 교부는 2년 6개월 형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인도자를 잃고 허탈에 빠져 방황하던 그 때, 당시 묵동에 약25평 단독주택에서 남편 신현오와 아들 셋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김기순(현재 아가동산 교주)이 나타나 옥중에 있는 이교부가 자기에게 명을 내려 흩어진 자들을 김기순 위주로 모이라고 했다는 말에 맹종이 되어 약 350명 이상이 서울 묵동에 자리를 잡고 김 기순을 따르게 되었다. 김기순은 이교부가 출소 하는 날까지만 인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교부 명예를 회복해야 하니 논과 밭, 집을 팔아, 있는 돈을 모두 가져오라고 했다. 만일 부모형제 처자라도 반대하면 버리고 와야 한다, 그렇게 않는 자는 이교부와 상관없는 자라고 했다. 우리는 이교부가 옥중에서 지시를 한 것으로 믿었다. 우리는 하계동 주변에 허름한 집을 마련하여 합숙을 해가며 밤과 낮이 없이 남녀노소 어린 학생들까지 전부 다 김밥, 떡, 어묵 각종 노상 장사를 시작했다. 1981년 이교부가 출소했다. 김 기순 말로는 이교부가 출소하면 묵동으로 와 우리와 함께 산다고 했으나, 이교부는 익산시 주현교회로 내려갔다. 우리도 익산으로 뒤따라 내려갔으나, 이교부는 김기순이 한 일이 자기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우리를 인정하지 않고 쫓아냈다. 영문을 몰라 허탈해 하는 우리를 김기순은 다시 묵동에 집결시켜 감언이설로 유혹했다. 나는 이교부의 비밀을 가져왔다. 이교부가 우리를 쫒아 낸 것은 김기순 말을 듣지 않고 서울로 오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책망하여 쫒아낸 것같이 쇼를 했다. 사실은 김기순 따라 묵동에 모인자만 선택받은 자기 백성이라고 하고, 이교부가 말하기를 김기순은 350명을 데리고 신나라 에덴동산 이교부 나라를 건설하여라. 밖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고, 신나라가 건설되면 돌아와서 함께 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선택받은 자로 알고 기뻐 좋아하며 김기순을 따르게 되었다. 사실은 그때부터 우리는 쫓겨난 자요, 이교부와는 상관없는 길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장사하여 돈을 모아 신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1982년에 경기도 이천 지금 아가동산 자리에 수만 평 땅을 사고 개간하고 건축하였던 것이다.
이 때 김기순은 밖에 두고 온 재산이 있고, 부모에게 받을 유산이 있다면, 어떠한 수단을 가리지 말고 가져오라고 했다. 만일 다시 돌아가려는 자에게는 가져온 돈과 이자와 일당노임까지 계산하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돈 가져온 자들이 소유권행사를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땅을 전부 연명으로 등기를 했다. 3백 명이 넘는 자들이 마치 이 교부를 따르듯 김기순을 따르고 추종하기 시작했다. 김기순은 점점 자기 야욕과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 했다.
익산에 이교부는 육(肉)이요, 김기순은 이교부 영이요, 이교부 따르는 자들은 고깃덩어리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영이 되었다고 했다. 이 교부는 자신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이고, 김기순 자신은 재림하실 그 예수라 했다. 우리는 그런 말도 너무 좋았다. “이교부가 하는 말은 전부 거꾸로 듣고, 거꾸로 해석하면 딱 맞다.” “여기서 나가더라도 이교부한테만 가지 않으면, 마지막 소망은 있다.”며 이교부와 접촉하여 이탈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하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이런 식이었다. 만약 봉쇄하지 못하고 격리시키지 못할 경우, 김기순이 이교부를 빙자하여 300여명 사람들을 상대로 행한 모든 거짓과 사기행각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찢기고 상처받은 가슴을 안고 그곳을 나온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김기순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영을 주기를, 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여 아가동산에 있는 자는 영이 되었으니,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고 천년동안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왕이 되어 세상을 심판한다고 했다. 우리는 영이니 부모 형제 인정도 끊고, 정욕도 끊어야 한다고 하여 아버지를 “아저씨”, 어머니는 “아줌마”라고 부르게 하고, 부부도 남남이 되게 하고, 결혼도 못하게 하여 새로 태어난 아이가 하나도 없었으나, 부모를 따라 들어간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도 부모와 격리시켜 생활하게 하였다.
그 중에 최낙귀(6살)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아줌마 미워요 싫다.”고 했다. 김기순은 어린것이 하나님 영을 배반하고 거역한다며, 마귀를 빼내야 한다고 돼지 막에 묶어놓고, 4~5일간 밥도 주지 않고 어린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동원시켜 돌아가며 때리게 했다. 만일 누가 가만히 때리면 인정도 끊지 못한 자요, 자기 말을 거역한자라고 하기 때문에 서로 앞장서서 때렸다. 최낙귀가 더욱 울면서 발악하자, 마귀가 독한 놈이라고 돼지 똥을 입에 넣게 하고, 김기순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면 낙규처럼 된다는 것을 본보기로 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는 하나님이니 사람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부모에게 자식을, 자식에게 부모를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새 예루살렘 성전에 참여 한다고 세뇌하기 시작했다. 또 최낙귀는 개띠고 김 기순 자기는 토끼띠라고 했다. 개와 토끼는 상극이다. 개는 토끼를 죽인다. 그러므로 낙규가 크면 아가동산과 자기에게 해를 끼치니, 아가동산에 두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어른들 어린아이까지 경쟁하듯 준비 해 간 뽕나무로 낙규를 때리고, 돼지똥을 입에 밀어 넣고, 돼지막 청소하는 커다란 물 호스로 얼음장 같은 지하수로 물대포를 쏘기를, 닷세에 걸쳐 인간이 아닌 짐승도 생각할 수 없는 온갖 폭력을 휘둘러 아이는 돼지막에 묶인 첫날 “배가 고파요!”라는 말만 허공에 뿌려놓고 5일만에 그 추운 밤을 이기지못하고,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짧은 생을 마쳤다.
최낙귀의 아버지, 어머니는 밖에 나가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 부모는 그 광경을 보지도 알지도 못했고. 그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장사하고 돌아와 아무 영문도 모르는 부모를 김기순이 불러서 “낙규는 마귀다. 자라면 아가동산과 김기순을 대적하고 부모에게 해를 끼친다. 악한 마귀는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어 다른 아이들도 김 기순을 거역하지 않고 충성해야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데려갔다.” 그러므로 부모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었다며 격려하여, 그 말을 들은 자들에게 부러움을 사게 하였으니 천인공노 할 일이 아닌가?
이 사건으로 1996년 아가동산 사건에서 법정에 선 김기순은 “나도 애 키우는 하늘로 머리를 둔 엄마로서 그럴 수 있느냐? 만약 그 어린것을 그렇게 했다면 천벌을 받아야 마땅하지요.”했다.
김기순은 낙규 아버지를 따로 불러, 이천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오게 한 뒤, 낙규 죽는 것을 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시골 할머니집에 보냈다고 하여 다른 사람에게 낙규가 죽은 사실을 숨기게 했던 것이다.
또 다른 아이 송 진훈(가명-낙규 또래)은 오줌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추운 창고 바닥에서 자게하고, 다음엔 돼지 막에서, 다음엔 한밤에 공동묘지(이천 대대리)에다 아이를 데려다 놓고 오게 하였다. 그 어린아이가 얼마나 무섭고 놀랐던지 그 아이는 계속 오줌을 가리지 못하여 무수히 매를 맞고 온갖 학대를 받았다. 지금도 그 아이는 그 때 받은 상처와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슴에 한을 품고 살고 있다.
김기순은 또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아가동산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이 많이 있다. 핵탄두를 쏘아도 무너지지 않는 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세상을 불과 지진으로 심판할 때 아가동산 사람만 그 안에 들어가 살 수 있다. 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 하는데 쓰임을 받는 것은 어떤 것도 영광이 되고, 돌(石)도 구원받았다고 기뻐한다고 하면서, 밖에 나가 절도, 강도, 사람을 죽여도 하나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니 죄가 되지 않는다. 양심에 조금도 가책 받으면 안 된다고 하여 우리는 그 말에 밤낮 가리지 않고, 잔디, 모래, 돌, 소나무 등 아가동산에 필요하고 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어디에 있든 닥치는 대로 훔쳐 오기 시작했다. 만일 발각되어 아가동산 소행으로 드러나면 아가동산에 명예가 손상되니 주인이나 검문소에서 걸리면 그 사람을 죽여 흔적을 없애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 김기순 지혜라고 했다. 우리는 화물차에 도끼, 삽을 싣고 다녔다. 아가동산에 있는 우리들은 이미 양심도 마비되고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는 비인간화 되었고, 오직 김기순 교주만이 절대 신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 검사, 판사, 언론, 변호사, 정치인, 대통령, 귀신까지도 자기가 부리는 종이요, 하인이라 했다. 김기순이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역사니 무엇을 해도 죄도 아니고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을 죽일 권세도 살릴 권세도 있다고 하여, 그 말을 듣고 오금이 떨려 누구도 불만이나, 탈출 할 꿈을 꿀 수 없게 했던 것이다. 김기순의 만행은 날이 갈수록 포악 해 지기 시작했고. 누구든지 아가동산 일과 자기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불만하고 탈출하는 자가 있으면, 밖에 나가도 결국 심판 받아 죽을 자이며, 탈출해도 하나님이 그냥 살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며 어느 귀신이 잡아갈지 모른다고 했다.
이렇게 김기순은 절대적인 교주로서 공포심을 유발하면서 자기 위상을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한 자만이 새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산다고 하여, 서로 감시하여 상대의 허물을 먼저 고발하게 하여 누구에게도 불만이나 불편한 심중을 이야기 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부모, 자식, 부부, 남녀가 조금 가깝게 지내든지 이야기라도 하면, 인정과 정욕을 끊지 못했으니 죄를 빼 내야 한다며,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시켜 먼저 몽둥이로 때리게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몰매를 때리게 했다. 만일 죽어도 자기들이 때려 죽였으니, 누구도 신고를 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며, 이것도 김기순 하나님의 지혜라 했다. 그곳에서는 누가 먼저라고 말하기 전에 김기순 말만 떨어지면 부모든 자식이든 먼저 앞에 가서 강도 높게 때려야 김기순에게 충성된 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편, 김기순은 밤마다 젊은 남자,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자기 맘에 드는 자를 불러 교대로 성행위를 했다. 김기순의 세 아들은 서울에다 집을 따로 사서 보모 가정교사를 두고 중고등학교, 대학, 유학까지 시키면서, 자기 식구는 특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자식들 대부분을 음반제조관련 공장일, 농사일을 시키기 위해 초등학교, 중학교도 못 가게하고, 대외적인 표본으로 손가락 안에 드는 공부 잘하는 몇 명만 고등학교를 보냈고, 대학은 한 사람도 보내지 않았다. 강 미경 이라는 처녀는 1988년 김기순 큰아들 신영복(장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넋을 잃고 죽으려고 고민하는 것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되자, 김기순도 알게 되어, 김 기순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면, 김기순 가정에 허물이 되기 때문에 자기아들의 책임이 아니고 강미경이 꼬리쳐 그렇게 된 것이니, ‘전적 강 미경의 죄’라는 것이었다. 부모를 시켜 먼저 때리게 하고, 여러 사람들이 몰매를 때리게 했다. 자기아들에게 당한 것을 폭로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그러면서 죽여야 한다고 하니, 여러 사람들이 경쟁하듯 때렸다. 미경이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매를 맞아 바지에 소변을 보고, 눈을 부릅뜨고 초죽음 상태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있던 김 기순은 “저년이 감히 누구를 보고 눈을 흘기며 거역하느냐! 죽여도 분이 풀어지지 않는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이성을 잃은 맹신자들이 “네가 감히 아가야 하나님에게 대들고 죽는 시늉하면서 엄살 피느냐!”며 더욱 세게 때려 숨지게 했다. 부모가 그곳에 있었으나, 김기순을 반역하고 죄를 지었으니, 딸이 죽는 것도 김기순에게 감사를 했다. 그리고 부모는 김기순의 지시대로 가출신고를 했다. 강미경이와 최낙귀의 살해 사건이 계기가 되어 1996년 언론에 집중 보도 되었던 “아가동산 살인사건” 당시 부모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서 “미경이는 죽지 않았고 가출했다.”고 김기순이 시키는 대로 증언했다. 김기순도 법정 판사 앞에서 부모가 엄연히 (아가동산에서)함께 살고 있는데 죽이겠냐고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부인하고,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며 그런 일이 결코 없다고 했다. 또 당시 임헌관을 증인으로 내세워 “밖에서 미경이를 봤다.”고 거짓증언을 시켜, 결국 살인은 무죄를 받은 사건이었다. 이후 강미경의 아버지는 홀로 괴로워하다가 탈출하여 나왔으나, 그 어머니는 지금도 김기순의 갖은 술수에 얽매어 귀도 멀고, 눈도 멀어 김기순을 수종 들고 있다.
김기순 남편 신현오 역시 처녀뿐 아니라 유부녀까지도 성폭행을 일삼았으나, 성폭행 당한 여자들이 김기순의 묵인아래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고 현재도 살고 있고, 탈출한 자들도 그 안에서는 발설하면 무조건 여자에게 책임이 있다하여 몰매를 때려 죽이기 때문에 함구하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교주 김기순과 남편 아들들은 특권을 가졌으니 허물과 죄가 없다고 했다. 점점 김기순의 만행을 보고는, 그곳에 재산을 모두 놓아두고 수십 년 노동착취 당하면서 병들고 불구가 되고, 돈 한 푼 없어도, 탈출하는 것만이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몰래 빠져나와야 했다. 그곳을 빠져 나온 이후에도 한동안을 김기순이 말했듯이 언제 어느 귀신이 와서 잡아갈지 몰라 악몽을 꾸며, 공포 속에 숨어 살았다. 몇몇 사람이 용기를 내어, 1996년 언론과 사회에 여론화 시키며 진정하고 검찰에 고발 해 보았으나 누구도 귀 귀울이고 눈을 돌려주지 않았고, 오히려 탈출하여 호소하는 자들을 정상으로 보지 않았다. 탈출하여 나온자들이 많이 있으나, 그 안에서 얼마나 세뇌되고, 후환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을 지금도 함구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입을 열어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에게 맹신되어 그 만행에 동조 한 것을,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듯이 탄식할 날이 있을 것이다. 김기순은 1996년 사건을 당하면서 앞으로도 탈출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그들이 밖에 나가 재산소유권 주장을 할 것을 대비하여 “아가동산 재산은 한 푼도 돌려 줄 수 없다.”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아가동산 협업마을 총유재산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며 부랴부랴 당시 사건담당 변호사와 짜고, 박영주, 이태규, 안동조 등 심복들에게 지시하여, 구성원들의 도장과 위임장을 위조하여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완벽하게 해 놓으라고 했고, “협업마을 농장총유재산”이라는 조작 된 약관을 만들면서, 마치 1982년에 이미 만들어 놓은 것처럼 날짜를 위조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던 우리는 협업농장이니 총유재산이니 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엉터리 문서를 만드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고, 오로지 김기순 하는 일은 무엇이든 박수만 치고 찬양만 한 것이다. 김기순은 누가 탈출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나간 자들은 돈 가져오고, 수고만 몽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끝까지 자신을 따르는 자만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왕이 되어 산다며 누가 자신의 지혜를 당할 자가 있냐며 비웃었다. 김기순은 또 말하기를 탈출자들은 돈도 없고 무식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들어 줄자가 아무도 없다. 김기순 자기는 돈이 얼마든지 있고, 변호사 검사 판사도 다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내편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 왔어도 한 푼도 주지 않겠다. 변호사한테 수억원을 줄지언정 나간 자들에게는 10원 한 장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가동산은 끝까지 남는 자 여러분에게 주기 위한 것이다.” “여러분이 나가면 나갈수록 내 몫은 커진다.”라고 하니, 지금도 그곳에 있는 자들은 그저 김기순을 하나님으로 믿고 더욱 충성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의 핵심 인물들까지 탈출하면서, 2001년에 다시 용기를 얻고 합심하게 되어 이 밝은 세상에서 아가동산 불법과 살인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알리기로 했다. 언론과 대한민국 법에 호소하면 김기순 만행이 낱낱이 밝혀질 줄 알았다. 그러나 김기순이 학교 대신 어린아이들의 노동까지 동원하고, 잠을 재우지 않고 일시키고, 교통사고 합의금 대신 수감생활을 시키고, 고통과 생명을 담보로 병원비 등을 아껴서 모은,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수법으로 거머쥔 돈, 그 돈의 위력 앞에서 김기순의 불법과 비리, 살인은 언론, 변호사, 판사, 대법원까지도 썩은 고목나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힘없이 무너지고 허수아비 꼭두각시가 되어 침몰되는 것을 우리는 불꽃같은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돈 없고 권세 없는 우리가 죄인이다. 모든 재산과 노동까지 착취당하고도 생명을 무릅쓰고 탈출하여, 살인과 불법을 폭로한 우리들은 너무나 비참하고 허탈했다. 돈 없고, 무식하고, 힘없는 우리에게는 나라도 이웃도 법도 대통령도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고 보니,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힘없고 억울하게 당한 일-이것이 곧 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리석었다. 미련하고 눈이 멀어 맹종으로 김기순 교주에게 당한 한을 누가 풀어 주고 누가 갚아 줄 곳이 있다고 호소했던가? 김기순 교주에게 당한 허탈을 다시 한 번 또 당한 격이 되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고 외치고 이 세상을 저항하다 처형당한 자들-막가파들만이 우리의 동지가 아닌가 싶다.
김기순 교주가 그동안 아가동산 안에서 왜 그렇게 말끝마다 큰 소리 치면서 언론 변호사 검사 판사 대통령까지도 자기가 부리는 종이요 하인이다. 나는 무엇을 해도 죄가 안 된다. 누가 한 구멍으로 쳐들어오면 자신은 열 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한 말이 진정 옳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믿게 되었다. 과연 김기순은 지금도 이 땅에 건재하게 살아있는 하나님이요 만왕의 왕이다. 1996년 아가동산 사건 발표 이전에 발생한 공개 된 살인사건 최낙귀, 강미경 외에 88년 1월부터 김기순과 아가동산의 불법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윤용웅, 서종원 의 의문의 죽음이 있었다. 윤용웅(남.당시44세)은 강활모, 정문교, 김호웅, 윤방수 4명에 의해 작업복 입은 그대로 대전 소재 야산 응달에 암매장 된 것인데, 아가동산 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가족들의 끈질긴 추궁 끝에 밝혀졌던 것이다. 서종원(남.당시43세)은 최낙귀를 죽여 없애는 것을 보고, 부인에게 이곳을 도망 나가자고 했다가, 죽기 하루 전 날 저녁에 김기순의 여동생이 알 수 없는 한약 한 대접을 직접 들고 가서 보는 데서 먹였고, 그날 밤에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88년 당시 이천 아가동산 농장에서는 죄를 다스린다며, 김기순의 지시대로 집단 폭력 행위가 거의 매일 발생했고, 10여명의 집단폭력 피해자들은 지금도 그 때 맞은 후유증으로 정신적인 고통과 악몽은 물론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몸이 아파 돈벌이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1996년 아가동산 사건 이후에 추가로 2001년 여름에는 여러 가지 부당함과 불만을 가지고 김기순에게 항의 했던 백합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오경애(당시45세)가 제주도 여행길에 물에 빠진 시체로 떠올랐고, 이 사건 또한 은폐하기에 급급했으며, 2008년 가을에는 살해된 강미경을 밖에서 보았다고 법정에서 거짓증언 하고, 그 일로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임 헌관(52세)이 또 죽어 나갔다.
이 모든 사망사건에는 김기순 혼자만이 아닌, 그 사실과 비밀을 알고 있는 실행자와 목격자와 사후처리 한 하수인들, 관료들도 있다. 그 죽음에 말 한 마디 한 것으로라도 사실을 은폐하고 위장하는 데 일조 한 당사자는, 자신도 그들처럼 희생 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히 상기하기 바라며, 이제는 김기순의 회유와 달콤하게 포장한 악령의 손에서 벗어나,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만들지 말고, 잠자고 있는 당신 가슴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그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
기억하는가? 김기순이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연민으로 애도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진심어린 기도를 한번이라도 했던가? 하나같이 천년세계 하나님 나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려갔다고 하며, 김기순을 거역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만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무엇이 의(義)인지 불의(不義)인지 깨닫지 못하고, 김기순과 함께 그곳에서 피묻은 손과 피묻은 그릇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이여! 하루속히 짐승만도 못한 악의 사슬을 끊고, 진정 신성한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와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한다. 앞으로 어떤 이유로, 그야말로 어느 귀신이 잡아 갔는지 모르게 하나 둘 죽어갈 대상이 되는 우리의 친구가, 동료가, 이웃이 지금도 이천 아가동산 안에 수십명이 있는 이상, 또한 그들이 오대양 집단자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 할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앞으로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기를 바라는 충정어린 심정으로 이 글을 세상에 공포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그것이 믿음인줄로 알고 김기순과 함께 행한 집단폭력과 살인에 이르는 만행, 도적질을 일삼아 아가동산을 건설한 불법행위들에 대해, 우리가 그것을 막지 못하여, 오히려 우리의 잘못된 판단과 맹신으로 인해 김기순을 살인자로, 불법을 행한 범법자로 만들고, 그 고귀한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고 함께 죽임에 동참했던 우리들의 과오를 돌이켜 볼 때, 사실은 김기순도 피해자요, 우리는 이 모든 책임을 통감하며, 가슴깊이 속죄하는 맘으로, 이 참담함을 가슴을 찢고 하늘에 속죄하기로 그 죄 값을 어찌 다 치를 수 있겠는가? 또한 김기순을 포함한 우리들로 인해 명예를 훼손당한 피해자 이교부에게도 사죄를 구한다. 아울러, 탈출하여 나와 지금도 후환이 두려워, 혼자 알고 있는 비밀을 차마 입을 열어 밝히지 못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이여! 용기를 내어 우리로 죽임을 당하고, 두려움에 떨고, 상처 입어 지금도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는 그 어린 새까만 눈동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악행을 깨끗이 척결하는 데 동참하기를 촉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더럽혀진 모든 것들을, 우리 손으로 깨끗이 척결하여 불법을 행한 교주 김기순과 그에게 속아 갖은 불법 만행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데 까지 동참했던 자들의 결과가 어떻게 끝난다는 것을 보여서, 세상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아가동산 불법교주와 그 악의 열매들을 우리가 두 눈을 감기 전에 김기순에게 배운 그대로 하나도 빼지 않고, 더하고 덜함이 없이 동일하게 끝까지 응징할 것을 공개하고, 우리 또한 김기순의 악행을 방조하고 동조한 자들로서 그 책임을 지고, 처벌 받을 것을 만방에 선포하여 알린다. 신나라 아가동산 김기순 교주의 비리 공개 및 최후 통첩 김기순은 들으라!
너희 세 아들은 성대히 결혼시켜 자식을 낳게 하고, 노동이나 행상,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남편과 아들들, 친인척까지 아가동산의 신나라계열 회사의 회장 사장 이사장 자리와 재산을 분배 해 주고, 고급주택과 외제차까지 사 주고, 돈을 물 쓰듯 하고, 어떠한 죄를 짓고도 특혜를 받아 죄 없다고 했다.
1981년 집과 논밭 전 재산을 팔아 간 장징호의 막내딸 장은주(8세)양은 병원에서 ‘뇌종양’진단을 받고 입원 중이었으나, 암은 결국 죽을게 뻔한데, 병원비만 날리고 실험용밖에 안된다고 하면서 집으로 퇴원시켜 결국 15일만에 어린 것을 그냥 죽게 방치했고, 어린초등학생까지 공장일, 죽염일, 농사일을 시키면서 학교진학도 안 시켰고, 밖에 나가 장사하다 교통사고로 합의금 300만원도 아까워서 몸으로 떼우라며 20살 어린청년을 교도소에 보내면서-, 김기순 너는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불법 탈세 살인까지 하고, 아가동산 재산으로 자기허물을 가리기 위해 방패막이를 삼아 엄청난 변호사비와, 탈세혐의로 받은 벌금 형 하루 2천만원짜리 수감생활 10개월을 피하기 위해 56억원의 벌금을 자기 멋대로 내고, ‘새 예루살렘성전’이라며 450억원을 들여 건축하여 자기 왕궁으로 삼고, 이것을 ‘복지회관, 문화회관’으로 위장하고, 사이비종교 교주를 위장하기 위하여 레코드 음악 박물관을 300억원 들여 세우겠다고 큰소리치며,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위인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김기순 너는 언니, 조카들에게 까지도 재산을 분배하고,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여러 곳에 로비를 했다 김기순이 어떻게 했으며, 얼마를 썼는지 잘 알고 있다. 30년 동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신이 되어 멋대로 호의호식하고 살았다. 그 모든 돈을 회수하여 아가동산 재산으로 반환 해 놓아야 한다.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김기순 너는 악법을 일삼은 살인자며, 도덕적 윤리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정을 파괴한 가정 파괴범이다. 피해자들과 죽은 자들에게 속죄를 빌어라! 또한 너는 이교부 이름을 사칭하여 그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이교부에게도 사죄하라! 김기순 너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더 이상 속이고 위장하려 하지 말고, 불의의 손을 씻고, “하나님의 신”-그 자리에서 내려와 가족과 함께 스스로 자결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일 위에 경고 한 것을 하나라도 빠짐없이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 집행부는 하나가 되어, 김기순 너에게 불법과 살인에 동참해서 보고 배웠던 그 때 그 충성심으로, 짐승만도 못한 양심없는 인간이 되어 똑같은 방법으로 빠짐없이 김기순 너에게 보상 하겠다. 김기순 너의 불법에 동조하고 놀아난 하수인들 돈, 변호사, 검사, 판사, 어떤 정치인도 김기순 너의 생명을 지켜주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 것이다. 그들마저도 이제는 김기순 너의 행적을 낱낱이 직고하고 돌아 설 것이다.
김기순 너는 많은 자들을 죄를 뺀다며 몰매를 때리게 하여 죽이고, 자신을 거역하고 불평하면 처참하게 죽는다는 것을 본보기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선택받은 자라고 했듯이, 이 땅에 불법, 거짓, 사기와 살인교주의 종말이 얼마만큼 처참하다는 것을 만방에 보여주어 다시는 아가동산과 같은 불법과 만행이 이 땅에 발붙일 수 없게 하기 위하여, 오늘은 김기순 네가 선택 된 제물이 되었다.
김기순 너의 죄는 하늘에 상달되었고, 우리의 분노는 온 우주를 뒤덮고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누구도 이 일을 막으면 그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맹종이 되어 따른 자들도 책임이 있기에 김기순 불법교주를 응징하고 아가동산 모든 재산은 불법에 동참했던 죄 값으로 인해 가난하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자들에게 돌아가게 하기위해, 우리는 정의의 나라에 환원하고서야 눈을 감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적 시효는 끝났을 지라도, 우리들 가슴속의 씻을 수 없는 이 아픔의 시효는 끝나지 않았다. 태양이 날마다 새로 떠오르듯이 오늘 - 또 다시 시작 되었다. 아울러 불의를 막지 못하고 살인에 동참하여 죽음을 막아주지 못해,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에게 진심으로 속죄를 빈다.
30년 동안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을 다 옮기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은 뒤로 하고 맺음코자 한다. -이것은 신나라 아가동산을 탈출한 약 254명 중에서 “30년 신나라 아가동산 불법 척결 집행부”를 결성하고, 이 모든 것을 결의 한 것임을 밝힌다.- 2009년 1월
신나라 아가동산 악행 척결 집행부 15명 외 피해자 239명 일동 1. 강 소재(421003-24) 서울 강남구 신사동 55-34(011-446-3731) 2. 강 신진(360207-14) 경기 시흥시 정왕동 1604-3 (010-67006907) 3. 김 순례(460802-24) 서울 중랑 묵1동 122-41 (010-5476-3738) 4. 명 민자(610625-24) 충남 보령군 화산동 589 (041-931-1404) 5. 박 금복(481111-20) 경기 안성 양성 필산 53-1 (010-2984-8207) 6. 백 숙자(591201-26) 전남 해남군 읍 해리 웅진빌 (016-217-7251) 7. 서 선순(490527-24) 충남 당진군 송악면 복운리 (016-500-8356) 8. 선 복례(590520-26) 전남 광주 광산구 비아동 103-(010-9221-9680) 9. 유 수(394201-12) 경기 이천 대월면 구시리 240 (031-631-0806) 10. 이 효열(521013-24) 경기 시흥 정왕2 주공5단지 502- (010-9037-9070) 11. 장 이순(540707-25) 서울 중랑 묵1동 122-41 010-2691-2333) 12. 조 정연(570505-21) 서울 중 장충동2 186- (010-6275-0394) 13. 조 신애(411215-20) 경기 포천 신북면 금호리 574 (010-2785-5140) 14. 최 명호(551219-15) 서울 노원 중계 369 주공A 210-(010-9124-3802) 15. 허 순애(490619-20)경기 남양주 화도 묵현 47 (010-7705-0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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